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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하얀 팔로 기지마저 쭈욱 켜며 샐쭉 초승달같은 눈웃음을 지으며. “오늘 정말 놀기 좋은 날씨다, 그치?” “그래, 버스 놓친 것만 빼면 완벽하네.” 내 볼멘소리에 늦게 깨달은 예슬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머,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예슬은 뻔한 것을 물어왔다. “혹시 나 때문이야? 어떡해, 다음 버스는 언제 ?” “아마 1시 40분에 J면 쪽에서 오는 버스가 있을 거야.” “얼마 안 남았구나. 다행이다, 한참 기다려야 하는 줄 알았는데.” 모았던 손을 내리며 긋, 안도하는 예슬의 모습에 거꾸로 내가 혼란스러워졌다. 따지고 보면 20분 남짓 기다리는 데에 있어서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도 왜 버스를 놓치면 그리도 조급해하며 짜증부터 냈었는지. 좁았던 시야를 벗어나니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확실히 놀기 좋은 파란 날씨라던지 빗줄기처럼 쏟아져 내리는 매미 소리라던지, 없는 그늘에 들어가려고 정류장 벽에 붙어선 나를 싱글거리며 관찰하는 예슬의 모습이라던지.

“너는 안 더워?” “에이, 여름인데 좀 더운 맛이 있어야지.” 햇빛 아래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을 보며 센 척 한다고 타박하기엔, 웃을 때 드러난 하 열이 너무 눈부셨다. 한 차례 학생들이 우르르 떠난 뒤에 온 버스는 확실히 한산했다. 콩나물 시루처럼 빽빽이 들어차 실려가는 것에 비하면, 소 늦더라도 자리에 나란히 앉아서 가는 것은 전혀 나쁘지 않았다. “사람도 별로 없고, 오히려 좋지?” 예슬은 내 머릿속을 읽은 것처럼 옆구리 쿡 찌르며 물어왔다. 아까만 해도 자기 때문에 늦었다고 미안해 했으면서. 금세 의기양양해진 예슬이 어딘지 얄밉게 느껴졌고, 그렇게 느끼는 습에 스스로 놀랐다. 학교에선 여자아이들 쪽으로 의식적으로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관심을 받을 만큼 특출난 것도 니어서,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안 하고 있었다. 아니 사실 못 하고 있었다는 게 맞다. 여자아이들과 티격태격 싸우면서, 떤 때는 머리채를 붙잡고 질질 끌고다니면서 우악스럽게 장난하는 아이들은 나와는 다른 세상 사람들 같았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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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 그제야 여자아이랑 놀러 가 있다는 것이 조금씩 실감이 났다. 예슬의 하얀 다리가 교복 바지에 부대끼며 따스한 체온을 전해 왔다. 머릿속이 복잡하게 엉켜갔다. 너무 말수가 없다고 재미없어하진 않을까. 그래, 읍에 가면 뭘 하고 싶냐고 물어볼까. 그런 건 센스있게 남자 쪽에서 생각해둬야 하나. 보통 여자아이들은 뭘 좋아하지. 포크로 파스타 면을 돌돌 말아올리는 데를 가야 하나. 이럴 줄 알았다면 점심을 거르고 올 것을. 아니면 오락실에서 동전 노래방이나 인형뽑기 같은 걸 해야 하나. 의외로 격투 게임 같은 남자아이들 취향일지도. 아니 애초에, 그런 데서 평범하게 노는 것으로 만족할까. 다행히 예슬은 내 고민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신나서 방방 뛰고 있었다. 버스 뒷좌석은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마다 그 몇 배의 높이로 요동쳤다 예슬은 까맣게 변한 원피스 끝단을 양손으로 꼭 붙들고 꺄아, 새된 비명을 질렀다. “또 온다 온다, 왔다, 으히!” “혼자 무슨 디스코 팡팡 타세요?” 보따리를 안고 이고 가는 할머니들의 눈초리를 못 견디고 타박을 한 건데, 예슬은 도리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왔다. “디스코 팡팡? 그게 뭐?” “헐. 한 번도 안 타 봤어? 이런 식으로 꿀렁거리면서 팡팡 튕기는 놀이기구 있어. 그런 원피스 입고 가면 DJ가 무지 예뻐해줄 걸, 아마.” 예슬 운 입술이 살풋 벌어졌다. 이제는 어떤 말이 나올지 조금 두려울 지경이었다. “아이 참, 예뻐해 준다니 곤란한데. 우리 어쩔 수 없이 그거 타러 야겠는걸?” “K읍에서 그런 거 바라지 마…….” “말투가 갑자기 너무 슬퍼졌는데?” “가 보면 알아…….” K읍. 내 고향이자 내가 아는 거의 전부인 전……이라고는 해도, 낡은 시계탑을 중심으로 주변 삼거리에 늘어선 가게들이 상권의 거의 전부였다. 3층 이상 올라가지 못한 건물들은 20년은 더 전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아직 읍에 남아있는 학생들을 위한 가벼운 악세사리점이나 경양식점이 트랙터가 주차된 농업사나 주렴을 걷고 들어가는 백반집 등과 불편하게 공존하는 곳이었다. 늘 보던 거리, 늘 보던 사람들 가운데에서 예슬만이 새로운 존재였다. 예슬은 이제 본격적으로 놀 시간이 되었다는 듯 속눈썹을 연신 깜박거리며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식은 땀방울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것을 날씨 탓으로 돌려, 눈살을 확 찌푸리며 정류장 맞은편을 가리켰다. “어우, 뭐가 이리 덥냐. 시원한 거라도 좀 먹을래?” “흐흥, 난 좋아.” 자리마다 자 대신 흔들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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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매여 있는 빙수 가게였다. 대도시에서는 프차이즈 커피숍에 먹혀 사라진 지 오래라고 들었지만, K읍에서는 아직도 아이 딸 주부들이나 중학생들이 소소한 만남의 장소로 애용하는 곳이었다. 당연히 이런 손가락 오그라드는 곳에 올 일은 그동안 없었다. 혹여 유치하다고 실망하진 않을까 걱정이 앞서 예슬을 돌아보았다, 만. “우와, 여기 진짜 예쁘다! 숨은 맛집인 거야?” “딱히 숨어있는 것 같진 않지만.” 풍부한 표정을 보아하니 취향 저격은 제대로 한 것 같았다. 생각하는 대로 얼굴에 다 드러나는 것이 평생 거짓말은 못할 팔자겠구나. 보드게임이라도 같이 하면 질 수가 없겠다는 생각을 하며 속으로 웃었다. 시험해 보고 싶은 마음에 흔들그네를 툭 건드렸다. “이거, 장식이 아니라 진짜 움직인? 슬의 눈이 동그래졌다. 가게 안에서 그네를 탈 수 있다는 획기적인 발상에 감탄한 예슬은 곧 성능을 적극적으로 시험하기 시작했다. 나는 말을 꺼낸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 정도로 무너뜨릴 수 있겠니?” 사장이 메뉴판을 들고 오다 웃으며 그런 말을 꺼냈을 때, 나는 쥐구멍에라도 고 싶었다. 누가 봐도 처음인 것 같은 예슬을 위해 나는 팥빙수를 하나 시켰다. 사장은 친절하게, 토스트가 공짜니까 자유롭게 이용해도 된다고 내를 해 줬다. “사장님 후회하실 것 같은데.” “왜?” “왜긴 왜야 너 때문이지.” “그래? 흐흥, 그럼 기대에 부응해 드려야지.” 토스트에 딸기잼을 떡칠하고 생크림까지 수북이 얹어 오며 함박웃음을 짓는 예슬을 보며 나는 한숨을 쉬었다. 어쩜 저리도 글로 배웠던 연애에서 한 치의 벗어남도 없는 모습인 건지. 뭐, 예슬이 속는 셈치고 먹어보라며 크게 찢어 입에 넣어준 토스트는 맛있긴 했다. 한가롭게 후식을 먹다 보면 자연스럽게 을 나눌 기회가 오지 않을까 싶은 계산도 들어 있었다. 후식이 거의 비어갈 때쯤에야 그것을 생각해 내고 줄곧 궁금했던 것에 대해 물어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어디 중학교야? 나 그렇게 유명해질 일 한 적 없는데. 이 지역 출신은 아닌 거지?” 그렇지 않고서야 K읍 빙수가게 정도에 반할 없으니까. 예슬은 다람쥐처럼 빵빵해진 볼로 단어를 만들려 애썼다. “에 그러헤 헹각해?” “아냐 안 급해. 안 급하니까 천천히 말해줘.